2009년 09월 25일
보여지는 '나'와 내가 되고 싶은 '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목마름만큼의 간극을 가지고 있다. 그 일치를 위해서 이상을 현실만큼 끌어 내릴 수도 있고, 현실을 이상에 맞추기 위해 끌어 올릴 수도 있다. 전자의 선택이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라면, 후자의 선택은 지독한 사람들의 것이다. 그 지독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부르기도 하고, '위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최소한 '노력가'라고 불린다.
여기에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 해서 12년간 일해 온 평범한 직장인이 있다. 34살에 결혼을 했고,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남자 아이가 한 명 있다. 1억 남짓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고, 4년 정도 지난 중형 승용차 한 대를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라면,
어릴때부터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냉정한 시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안 받는 삶을 추구하며, 귀찮은 일을 싫어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제3자적 입장에 서고 싶어하는 모습은, 남들에게 보여지지는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노동 해방과 인간의 해방, 사회 진보를 믿으며, 역사는 느리게 나선형으로 진보한다는 소박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몸으로 겪는 현실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상에서 너무나 많다. 중소기업과 서민 자영업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면서도 대형 할인 마트를 자주 이용하고, 투기로써의 아파트 매매를 욕하면서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는 분양 아파트가 어디 없나 기웃거린다.
요즘 나의 우울과 맥빠짐의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신념은 '이렇게 안 하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내가 평생 살 집이 아니면 집을 사지 않을 것이며, 내 아이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에 내몰지 않을 것이며, 나의 능력 범위 밖의 것을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을 것이며, 소박하지만 착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아파트를 반드시 분양 받아야 해, 우리 아이만큼은 남들보다 더 공부를 시켜서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해야 해, 남들에게 꿇리지 않을 만큼의 돈을 반드시 벌어야 해, 남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안 돼 하는 욕심과 탐욕에 꺾일까 두렵다.
'남들처럼', '남들만큼'의 주술이 반듯한 삶, 바른 삶에의 의지를 무너뜨릴까 겁이 난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행태와 삶의 정합성을 등가로 놓고 있는 게 나만의 오류일지도 모르겠으나..)
열심히 살자, 그러나 세상의 탐욕에 휩쓸려서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라는 작은 다짐을 해 본다.
** (오늘 둘째 아기의 임신 소식을 집사람에게서 들었다. 케익을 사와서 초촐하지만 작은 축하 파티를 했다. 둘째 아기의 태명은 '하루'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즐거운 삶을 사는, 좋은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 있다. 집사람의 건강만 된다면 아이는 되도록 많았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아이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욕심많은 도시의 삶은 버려야, 나의 살 길이 보일것이다.)
여기에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 해서 12년간 일해 온 평범한 직장인이 있다. 34살에 결혼을 했고,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남자 아이가 한 명 있다. 1억 남짓한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고, 4년 정도 지난 중형 승용차 한 대를 가지고 있다.
여기까지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라면,
어릴때부터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냉정한 시선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안 받는 삶을 추구하며, 귀찮은 일을 싫어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제3자적 입장에 서고 싶어하는 모습은, 남들에게 보여지지는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노동 해방과 인간의 해방, 사회 진보를 믿으며, 역사는 느리게 나선형으로 진보한다는 소박한 소신을 가지고 있다.
몸으로 겪는 현실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일상에서 너무나 많다. 중소기업과 서민 자영업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면서도 대형 할인 마트를 자주 이용하고, 투기로써의 아파트 매매를 욕하면서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는 분양 아파트가 어디 없나 기웃거린다.
요즘 나의 우울과 맥빠짐의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신념은 '이렇게 안 하면 살아 남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내가 평생 살 집이 아니면 집을 사지 않을 것이며, 내 아이는 살인적인 입시경쟁에 내몰지 않을 것이며, 나의 능력 범위 밖의 것을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을 것이며, 소박하지만 착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아파트를 반드시 분양 받아야 해, 우리 아이만큼은 남들보다 더 공부를 시켜서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해야 해, 남들에게 꿇리지 않을 만큼의 돈을 반드시 벌어야 해, 남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안 돼 하는 욕심과 탐욕에 꺾일까 두렵다.
'남들처럼', '남들만큼'의 주술이 반듯한 삶, 바른 삶에의 의지를 무너뜨릴까 겁이 난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행태와 삶의 정합성을 등가로 놓고 있는 게 나만의 오류일지도 모르겠으나..)
열심히 살자, 그러나 세상의 탐욕에 휩쓸려서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라는 작은 다짐을 해 본다.
** (오늘 둘째 아기의 임신 소식을 집사람에게서 들었다. 케익을 사와서 초촐하지만 작은 축하 파티를 했다. 둘째 아기의 태명은 '하루'다.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즐거운 삶을 사는, 좋은 작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담겨 있다. 집사람의 건강만 된다면 아이는 되도록 많았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아이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욕심많은 도시의 삶은 버려야, 나의 살 길이 보일것이다.)

# by | 2009/09/25 00:54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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