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왕국 1,2,3 - 요시모토 바나나 책의 향기



3권으로 된 이 왕국 시리즈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된 장편 소설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얇은 분량을 왜 3권으로 분책했냐고 짜증을 낼 정도였는데 (1권 127페이지, 2권 131페이지, 3권 183페이지) 3년이라는 배경을 알고 나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그래도 이 얇은 책들의 각 권이 8,500원이라는 사실은 그저 놀랍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주인공들은 여전히 비일상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내딛고 있는 공간은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작가의 변화와 성숙을 짐작케 한다.


산속에서 할머니와 약초차를 만들면서 자란 시즈쿠이시 (작중 화자), 점술가인 장님 가에데, 가에데의 동성 애인 가카오카, 선인장 전문가 신이치로 등의 인물들이 서로 얽히게 되는, 큰 사건들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서로의 내면에 큰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게 되는 촉촉한 감성의 이야기다.


오컬트적이지만 오컬트적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식물원같은 책이다.


책에 나오는 마음에 닿았던 구절들.


o 자신의 몸과 마음과 혼, 그것만 갖고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 하나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늘 같은 분량의 무언가가 눈앞에 있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만약 그렇게 느끼지 못하다면 그것은 본인의 문제다.


o 그리고 또 한가지, 죄책감을 갖지 마라. 약한 자신에게, 사소한 일로 변화한 자신에게. 누구든 그럴 수 있어. 너만 깨끗하게 살 수는 없어. 반성하고 생활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죄책감은 따분함과 외로움에 좋은 먹이 같은 것이란다.


o 나는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 남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되도록 같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을 찾아 같이 살라는 말인가?
물론 저절로 그렇게 되어 갈 테지만, 늘 그럴 수 많은 없기에 가끔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외국인보다 먼 사람들. 나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하지만 분명하게 설명한다.
당신과 나는 다르다는 전제 아래 상대로 하여금 상상해 보도록 유도한다.


o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잘못된 실에 묶여 있는 듯이 여겨졌다. 모순이 없는 상상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순조롭다. 그러나 열에 들떠 무언가를 외면하고 지은 성은 부실해서 무너지기 쉽다.


o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중간하게 금방 어른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찮은 일들로 하염없이 어린 시절은 연장하고, 중년을 죄책감으로 보내고, 많은 것들을 외면한 채 죽어 간다. 극단적으로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모두들 늘 앞으로 고꾸라질 듯 오 분 앞을 산다.
만약 그 시간이 일 년이나 십 년 앞이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 분 앞이면 그저 조급할 뿐이다. 모두들 서두른다. 에너지를 함부로 사용한다. 에너지는 금방 충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때문에 인생의 주도권을 시간과 주변에 내준, 그런 기묘한 세계가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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