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 ![]() 법정.최인호 지음/여백(여백미디어) |
법정 스님이 가신 지 벌써 5년 째이고, 최인호 작가가 선종한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새삼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는 격언이 멀리 있지 않다는 실감이 난다. 책으로 스님과 작가가 주고 받은 이야기를 읽으니, 두 분이 모두 아직 살아 계신 듯 말의 무게가 생생하다.
소설가 최인호는 천주교 신자이다. 기독교와 불교와의 관계와는 달리, 천주교와 불교는 우리나라에서는 끈이 있다는 느낌이다. 이 책의 산중 대담이 또 하나의 증거이겠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영성과 영성으로 여러가지 주제들 - 행복, 사랑, 가족, 말과 글, 진리, 삶, 시대 정신, 참 지식, 고독, 용서와 종교, 죽음 -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고요한 산 중에 들어가서 향기로운 차를 마시면서, 두 분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 중간 중간의 사진들도 멋지고, 평온하다.
<책 속에서>
o 최인호: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했어요. 지금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가난 자체가 행복한 것은 아니죠. 사실 빈곤과 궁핍은 불행이잖습니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행복이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같은 온도에도 추워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서늘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지만 특히 행복은 전적으로 아믐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o 최인호:
가정은 우리 최후의 보루입니다. 가족은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끝까지 지키지 않으면 너무 억울한, 우리 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식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절에 가서 불공드리고 교회 가서 기도하고 불우 이웃 좀 돕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오히려 집에서 왜곡된 사랑에 상처 받는 아이들을 어루만져 주는 게 더 중요하지요.
o 최인호:
거울을 닦아야 깨끗하게 볼 수 있듯이, 기억의 창고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늘 닦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의 회로가 낡은 영화 필름처럼 끊어져 버리지요. 그래서 상상력을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과 통하는 말이지요.
o 법정:
아름다움과 진실을 찾아내어 그게 알맞게 표현하는 창의력이 소설가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기 삶을 진지하게 살 수 있어야 하겠지요. 창조란 진지한 삶을 토대로 이루어지니까요. 모든 글이 다 그렇지만, 소설의 경우도 두번 읽을 가치가 없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닙니다.
o 법정:
오랜 세월 농경 사회에서 빚어졌던 훈훈한 인정과 아름답던 풍습이 사라져 가는 세태도 정말로 아쉽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경향을 무시한다든가 너무 정체되어 있어서도 안 되지요. 그런 면에서는 나도 반성하는 게 많아요. 옛날의 자로 지금 세상을 재려고 하면 안 되는데 내게도 고정 관념 같은 게 있어요. 자에는 표준이 아니라 탄력이 있어야 합니다. 유고도도 아닌 우리가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시절처럼 굳어 있어도 세상 발전이 안 될 거예요.
o 최인호:
간디는 우리를 파괴하는 일곱 가지의 증상이 있다고 했는데요, 일하지 않고 얻은 재산, 양심이 결여된 쾌락, 성품이 결여된 지식, 도덕이 결여된 사업,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원칙이 없는 정치, 희생이 없는 종교, 위기의 시대에 인동서 간디가 한 말이 우리 현실과 다 들어맞으니 기가 막힌 일이죠. 게다가 현대인은 모두 병을 앓고 있어요.
o 법정: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고단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죠.
o 법정:
그 무엇에도 쫓기거나 서둘지 않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과 상황에 순응하는 것, 그러면서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음미하는 것, 그것이 느리게 사는 것,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귀한 태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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