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끌림 - 여행 에세이, 그 시작 책의 향기

끌림 - 8점
이병률 지음/달



 어쩌다 보니 일주일 사이에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산문집 3권을 다 읽게 되었다. '끌림'은 2005년도 저작이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2012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가장 최근인 2015년에 나온 작품이다. 나는 출간 순서와 반대로 역주행을 했다.

확실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이러는 사이 이 계절은 후딱 지나버리고, 겨울이 오겠지만..).
여행이 가고 싶어졌고, 책이 읽고 싶어졌고, 아침마다 비염 때문에 콧물을 훌쩍거리게 되었다. 쉬는 날이면 집에 콕 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감히 떠날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여행에 관련된 책들만 며칠째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최근의 이 미칠듯한 탐독은 화성 생존기 '마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너무 멀리, 화성에까지 갔다 왔더니, 이 지적인 여행을 감히 멈출 수가 없는 거다.

지난 한 주 동안은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아서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나중에는 잠을 못 자서 책을 읽는 건지, 책을 읽느라 잠을 못 자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는 이병률 작가의 10년전 데뷔작이다. 여행 사진과 글들에서 감성이 차고 넘친다. 왠지 같이 여행을 다니다가는 (어떤 이유에서든) 누구 하나는 마음을 다치게 될 것 같은 그런 감성의 과잉이 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 책 속에서>

o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o 열정이란 말에는 한 철 태양이 머물다 지나간 들판의 냄새가 있고, 이른 새벽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올리며 무언가를 끼적이는 청년의 눈빛이 스며 있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타고 떠날 수 있는 보너스 항공권 한 장에 들어 있는 울렁거림이 있다. 열정은 그런 것이다.

o 괜찮다. 여행은 당신의 그런 사소한 취향을 다려 펴주는 대신 크고도, 굵직한 취향만 남게 할 테니.

o 구슬을 떨어뜨렸을 때 그 구슬의 끝을 보지 못하면 우린 영영 그 구슬을 주울 수 없다.

o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o 그러니까 잘 살기 위해선 뭔가를 자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과 내가 죽더라도 아무도 목이 메게 하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은 거야.

o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되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되고 수심 깊디깊은 강을 건너는 일처럼 시작하지 말아야 했을 일이 돼버린다.

o 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런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 그러면 된다.

o 좋은 풍경 앞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 가는 새가 있어.

그 새는 좋은 풍경을 가슴에 넣어두고 살다가 살다가 짝을 만나면 그 좋은 풍경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일생을 살다 살다 죽어가지. 아름답지만 조금은 슬픈 얘기.

o 역사가 길지 않은 믿음은 가볍다. 그 관계엔 부딪침만 있고 따분함만 있을 뿐이며 혼자인 채로 열등할 뿐이며 가벼울뿐더러 균형마저 잃는다. 심연은 깊은 못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한가운데 존재한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 끝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끝이고 더 이상 아름다워질 것도 이 땅 위에는 없다.

o 상상력이 부족해서 더 가난한 시대에, 사람들은 함부로 남을 이야기할 때만 상상력을 동원한다. 그 뻔한 상상력만으론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살고 있는 눈치다. 진정으로 남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서, 낯선 공간으로 끌려들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먹먹해지고 막막해져서 조금 나은 상상력의 밑천을 짊어지고 돌아오기 위해 나는 먼 길에 머무르기를 좋아한다.

o 언제나 한 가지 대답이면 된다.
닥치는 대로....... / 될 대로 되라. / 난 겁내지 않는다. / 이것도 운명이다.

이 모든 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존재한다. 라틴어 '케 세라 세라 (Que Sers S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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