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책의 향기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설민석

 조선 왕조 실록은 '한권으로 읽는 조선 왕조 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만화)'에 이어 3번째다. 앞선 책들과 이 책의 다른 점은 비교적 근래에 쓰여졌다는 사실 이외에, 저자의 주관이 뚜렷하게 들어 있다는 점이다. 역사 공부 차원에서 읽어도 좋고, 교양 서적으로 읽어도 좋겠다.

조선시대 왕조사를 읽다 보면, 그렇게 엉망인 사회 구조가 어떻게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까 놀라게 된다. 27명의 왕이 다스리는 동안 백성들의 삶이 그나마 평온했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4명의 왕 때뿐이었다. 세종, 광해군, 영조, 정조가 그러한 때로, 짧은 기간(전체 기간의 1/5 정도)이었다. 광해군이 애민 군주로 떠오르는 것은 분명 최근의 역사 연구의 성과이자 재해석일 것이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악덕 군주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던 그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당시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절묘한 중립 외교를 펼친 뛰어난 균형 감각을 가진 왕으로 평가 받는 것은 최근의 우리나라의 실정 - 강대국에 이리저리 치이는 외교 (물론, 이 결과는 어리석은 리더로 인해 초래된 결과일 것이다.) - 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조직 개편, 리더의 교체등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런 변화의 시기에 권력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도 나름 될 수 있다고 본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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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解明 2016/10/29 10:21 # 답글

    설민석 씨의 책은 안 읽어서 그분이 무엇을 근거로 광해군을 평가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에는 광해군을 '재재평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박시백 화백의 만화에 그려진 광해군의 모습이 최근 학계에서 바라보는 광해군의 모습과 비슷한데, 친국하는 일이 지나칠 정도로 잦았고 전란 이후 궁궐 공사를 너무 많이 벌인 점 등 때문에 '애민 군주'로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다만 박 화백이 광해군의 잠재력을 굉장히 높이 평가했다는 게 재밌습니다).

    또한, 광해군을 비판하는 학자로 이름을 알린 오항녕 교수는 광해군이 대동법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사실을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대중은 광해군이 대동법을 지지하며 기득권 세력과 대립각을 세운 줄 아는데, 이게 사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오 교수는 지적했지요. 오 교수의 광해군 비판은 광해군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워 보이는 일까지 광해군의 책임으로 모는 듯한 부분도 있으니 주의해서 받아들여야 하지만, 광해군이 그리 좋은 군주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 Wiky 2016/11/05 20:42 #

    이 책에서 광해군에 대한 서술은 304페이지에서 320페이지이니 짧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한줄로 표현한 제목이 '억울한 호랑이, 백성을 사랑한 전쟁의 영웅' 이니, 이 한 줄에 작가의 평가가 녹아 있다고 봅니다.
    작가가 지적한 그의 업적은
    1. 양전 사업의 실시
    2. 동의 보감 저술 지시
    3. 조선 최고의 세금 개혁; 대동법 실시
    4. 백성을 위한 실리 외교, 중립 외교
    등으로 볼수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에,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잘 읽어,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여 더 피폐해질수도 있었을 화를 예방했다는 점에서도 점수를 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 解明 2016/11/06 09:11 #

    앞에 쓴 댓글에서 말했지만, 대동법 연구가 옛날보다 더 깊이 이루어진 현재는 대동법 시행을 광해군의 치적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광해군은 이원익 등 신하들이 대동법을 확대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동법을 반대하는 말까지 했었지요.

    물론 세제 개혁을 어설프게 했다가 자칫 일이 틀어지면 전후 복구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테니 대동법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백성들이 낸 세금을 아끼기보다 궁궐 공사로 낭비했습니다. 조선 시대 임금들 가운데 광해군만큼 궁궐 공사에 열을 올린 임금도 없었는데, 이것이 다른 때도 아니고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광해군의 평전을 써서 광해군을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 군주'로 추켜세운 한명기 교수도 무분별한 궁궐 공사의 폐해가 컸음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전란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애쓴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른바 중립 외교는 광해군 재평가의 고갱이이기도 하고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앉은 인조와 서인 정권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파국을 막지 못했기에 광해군의 중립 외교가 더 돋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명기 교수가 "내치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라고 지적한 것도 곱씹어 볼 부분입니다.

    광해군은 즉위 초부터 옥사를 자주 벌였고, 아우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서궁에 유폐하는 패륜까지 저지르면서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명 제국을 사대해야 하는 나라로 여긴 사대부들의 인식과 사뭇 다른 외교 정책을 소신 있게 펼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신하들을 어르고 달래며 설득해도 모자랄 판국에 적대감만 잔뜩 키웠으니까 말이지요.

    선조와 인조가 국난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 탓에 광해군을 호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때 그랬고요. 이런저런 쓴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선조와 인조보다 광해군이 좀 더 나은 임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세자 시절에 상당히 뛰어난 자질을 지녔음을 보여 준 광해군이 정작 임금이 된 뒤에는 시대 과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또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배웠고 명색이 전문가라면 전문가인 설민석 씨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큰 통설에 기대 광해군을 평가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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