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맥베스 vs 맥베스 [The Movie] 영화 읽기



 레이디 맥베스의 당찬 여주인공은 플로렌스 퓨라는 1996년생 잉글랜드 배우가 연기했다. 20살이니 극중 주인공 캐서린의 나이 17세와 잘 어울린다. 이 영화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억압에서 해방된 욕망의 거침 없는 질주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시골의 부잣집에 팔려가다시피 결혼한 캐서린은 외출마저 허용되지 않는 억압된 환경에 처해진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편은 그녀에게 관심이 없고, 시아버지는 그가 가진 재산 소유물 중의 하나쯤으로 그녀를 취급한다. 그러던 중 남편이 경영하는 탄광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 수습을 위해 두 부자가 동시에 집을 비우게 된다. 집안에서 정숙하게 책만 읽으라는 당부를 무시하고, 캐서린은 외출을 감행한다. 자신의 하녀에게 못된 장난을 치던 하인들 중 하나인 세바스찬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세바스찬과의 관계에서 육체적 욕망에 눈을 뜬 캐서린에게 도덕이나 관습따위는 거추장스런 짐일 뿐이다. 그녀를 멈추게 하려던 시아버지, 남편, 남편이 후원했던 아이, 그리고 세바스찬까지 그녀에게 희생된다.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토대로 했다는 이 영화의 결말은 실제와는 약간 다르다. 캐서린의 결말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다. 마치 혁명의 과정은 부도적하고 피로 얼룩졌더라도, 체제 전복 이후의 일상은 그 전과 달리 고요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도 읽힌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 될수도 있다는.)

여 주인공의 매력이 넘치는 영화이다.   

(* 이 영화는 대한 항공 기내 영화 상영으로 감상했다. 초반 도입부는 좀 지루하지만 보다 보면 빨려 들어가는 매력이 있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2016년 작 / 플로렌스 퓨 주연 / ★★★★>



'레이디 맥베스' 감상 이후에, 그렇다면 오리지널 '맥베스'는 어떤 영화일까 궁금해서 찾아 본 영화이다. 맥베스는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중 하나인 작품으로, 실제 1040년에 스코틀랜드 왕으로 즉위했던 맥베스의 삶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전쟁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던 맥베스는 세 마녀로부터 '장차 왕이 될 것이며, (자신의 동료인) 벵코스의 아들도 왕이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다.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왕인 '덩컨'이 부재해야 한다. 충심과 욕망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를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이 간교하게 부추킨다. (이 여성의 캐릭터가 상징적이다. 욕망에 충실하고, 욕망을 갈구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표상처럼)

 맥베스는 왕을 시해하고, 왕의 시종들과 왕세자에게 누명을 씌워, 그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자신의 죄와 마녀의 예언의 실현에 대한 불안감으로 점점 미쳐가는 맥베스는 다시 세 마녀를 찾아가 새로운 예언을 듣는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는 결코 자신을 죽이지 못하며, 궁전 근처에 있는 버남 숲이 궁전 앞으로 오기 전까지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예언이다. 예언에 흡족해 하지만, 거꾸로 예언을 이용한 왕세자 '말콤'과 그의 장군 '맥더프'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영화의 영상미는 훌륭하지만, 세익스피어 원작의 시적인 대사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영화의 전개가 현대적 감각에 떨어지고,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맥베스는 '자기 실현적 예언'에 이끌린 전형적인 인물로도 볼 수 있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예언이야 삶의 의지를 북돋아 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게 하지만, 불행을 예언으로 믿는 사람은 결말이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말'에 얽매여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 영화를 욕망에 사로 잡힌 인간의 어리석은 삶으로 볼 것인가, 정해진 텍스트 (당연히 그래야 하는 규범이나 관습, 불문율 등)를 뛰어 넘는 인간의 의지의 위대함으로 볼 것인가,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저스틴 커젤 감독 / 2015년 작 /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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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효도하자 2017/10/09 12:22 # 답글

    초반엔 저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망에 휘둘리지만 모든 것을 잃고 마지막에가서 정해진 텍스트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자하는 캐릭터로 변모했다고 생각함.
    욕망에 휘둘러 자신의 사회를 망가트리지 않았으면 정해진 텍스트에서 벗어날 기회조차도 없었다는게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파멸을 향한 어리석은 삶을 살아야만 찾아오는 아이러니한 기회라도 해야하나?
  • Wiky 2017/10/14 22:33 #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읽힐수도 있겠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함부로 손가락질 하기가 망설여지는 캐릭터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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