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The Book] 책의 향기


  최근 들어 닌텐도 스위치 게임에 빠져서 책과 영화와 멀어져 있었는데, 정신 없이 멍한 가운데 다시 독서의 길로 되돌아오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명상과 선'의 작가 답게, 단순한 사물의 현상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 보라고 수많은 우화와 삶의 경험을 통해 알려 준다.

작가의 젊은 시절의 방황과 에피소드가 재미 있다. 대학 시절 거의 거지꼴을 하고 대학 교정을 돌아 다닌 일과 시골에서 사람들의 오해를 받아 쫓겨 난 일들은 웃기면서도 삶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것들이 지나가는 한순간 일 뿐이다.

요즘은 스마트 폰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혹은 정보의 쓰레기)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 와중에 이 책을 읽는 일주일 동안은 몸과 마음의 병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기억하고 새길만한 글귀들이 정말 많았다.

<책 속에서>

o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

o 삶이 우리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상처'가 아닐까? 상처 없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영혼은 스스로 고난이 필요한 시기를 아는 듯하다. 우리의 삶이 상처보다 크다는 것도.

o 영적 교사 페마 초드론은 말한다.
"안전하고 확실한 것에만 투자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행성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o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계시이다. 길이 막히는 것은 내면에서 그 길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곤 한다.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머리로는 이 방식을 이해할 수 없으나 가슴은 안다.

o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든는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o '기억, 꿈, 회상' 에서 융은 말한다.
"사람들은 점점 커져 가는 부족감, 불만족, 불안 심리에 떠밀려 새로운 것을 향해 충동적으로 돌진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가 약속해 주는 것들에 의지해 살아간다. 모든 좋은 것이 더 나쁜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눈부신 과학의 발견이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기쁨,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해 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게 만든다.

o 메사추세츠 의과대학 교수 존 카밧진은 말한다.
"스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할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자신의 광기를 당당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연민으로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단점과 마주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그 단점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 그래서 더 이상 그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본연의 전체성과 가까워지라는 것이었다."

o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 행운을 가졌는가? 누군가가 당신에게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o 신은 우리의 말을 들음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신뢰한다. 내가 설명하지 않는 것을 내 삶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o 한 아버지가 아들의 잠긴 방문을 두드리면 소리친다.
"어서 일어나!"
아들이 문도 열지 않고 말한다.
"일어나기 싫어요, 아빠."
아버지가 다시 소리친다.
"얼른 일어나! 학교 가야지."
"가고 싶지 않아요."
"왜 가고 싶지 않다는 거니?"
아들은 말한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첫째, 학교가 너무 재미 없어요. 둘째, 아이들이 나를 괴롭혀요. 셋째, 학교가 너무 싫어요."
아버지가 말한다.
"네가 학교를 가야만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해 주지. 첫째, 학교에 가는 것이 너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들이 너를 괴롭힌 건 오래전 일이야. 넌 지금 쉰두 살이야. 그리고 셋째, 넌 학교 교장이야. 어서 일어나! 장난감 그만 갖고 놀고."
쉰두 살이 되어도, 학교 교장이 되어도,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그곳에 있다.

o 우리는 바디 케어에는 열중하면서 소울 케어는 지나칠 만큼 무관심하다. 무어에게 심리 상담을 받은 사람 대부분이 겪는 고통은 영혼을 돌보지 않아서 생긴 마음의 병이었다. 영혼을 소홀히 하면 의미 상실, 무기력, 관계에 대한 환멸, 자기 비난, 폭력성과 중독 증세가 나타난다. 삶ㄹ에 생기를 주는 중요한 부분을 잃었기 때문에 영혼이 아픈 것이다.

o 추구의 여정에는 두 가지 잘못밖에 없다. 하나는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이다. 붓다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묻는 제자에게 말했다.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o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덧없고 영원하지 않으니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가 통제하려고 하지 않을 때 마음은 평화롭다.

o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When it flowers, we will see.' 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o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슬프고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
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래하라, 그러면 산들이 화답하리라.
한숨지으라, 그러면 허공에 사라지리라.

o 상대방의 불행에 공감하되,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평정심이다. 영혼의 소진 없이 타인을 지혜롭게 돌보려면 연민과 평정심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o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류시화 지음 / 더 숲 / 2019년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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